부동산 기초상식

전·월세 수리비는 누가 부담할까, 임대인과 임차인의 수선 의무 정리

선유 부동산 2026. 9. 30. 15:00

전세나 월세로 살다 보면 보일러가 갑자기 멈추거나, 천장에서 물이 새거나, 옵션으로 있던 에어컨이 고장 나는 일이 생깁니다. 이럴 때 가장 먼저 드는 고민이 "이건 내가 고쳐야 하나, 집주인에게 말해야 하나"입니다.

 

실제로 임대차 상담에서 가장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수리비 문제입니다. 금액이 크지 않은 경우가 많아 대충 넘어가기 쉽지만, 누가 부담하는지 기준을 모르면 억울하게 비용을 내거나 반대로 임대인과 불필요한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오늘은 수리비 부담의 기본 원칙과 상황별 판단 기준, 그리고 고장이 났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기본 원칙: 집을 '살 수 있는 상태'로 유지하는 건 임대인의 의무입니다

민법은 임대인에게 임차인이 집을 사용하는 데 필요한 상태를 계약 기간 동안 유지해 줄 의무, 이른바 수선 의무를 지우고 있습니다. 집을 빌려주고 그 대가로 보증금이나 월세를 받는 이상, 집이 제대로 기능하도록 관리하는 책임은 기본적으로 임대인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보일러나 배관처럼 생활에 꼭 필요한 설비가 오래되어 고장 났다면, 원칙적으로 임대인이 고쳐야 합니다. 반대로 임차인의 부주의나 잘못된 사용으로 망가졌다면 그 수리비는 임차인이 부담하게 됩니다.

 

다만 모든 고장을 임대인이 책임지는 것은 아닙니다. 판례는 임차인이 별다른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쉽게 고칠 수 있는 사소한 수선까지 임대인이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결국 판단 기준은 두 가지입니다. 고장의 원인이 노후인가 임차인의 과실인가, 그리고 그 수리가 생활에 필요한 큰 수선인가 사소한 수선인가입니다.


상황별로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1) 보일러가 고장 났을 때는 원인이 중요합니다. 사용 기간이 오래되어 부품이 닳았거나 기기 자체의 노후로 멈췄다면 임대인이 수리하거나 교체해야 합니다. 하지만 한겨울 장기간 집을 비우면서 난방을 완전히 꺼두어 동파가 생겼다면, 관리 소홀로 보아 임차인이 부담할 가능성이 큽니다.

 

2) 누수는 어디서 물이 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벽이나 바닥 속 배관이 낡아서 새는 것이라면 건물 자체의 문제이므로 임대인 부담입니다. 윗집에서 물이 새어 내려오는 경우라면 윗집 소유자나 거주자 쪽에 책임이 있을 수 있어, 우선 임대인에게 알리고 임대인이 윗집과 협의하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입니다. 반면 임차인이 설치한 세탁기 호스가 빠져 물이 샜다면 임차인 책임이 됩니다.

 

3) 곰팡이와 결로는 판단이 가장 까다로운 부분입니다. 외벽 단열이 부족하거나 건물 구조상 습기가 차는 집이라면 임대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환기를 거의 하지 않거나 실내에서 빨래를 계속 말리는 등 생활 습관으로 생긴 곰팡이라면 임차인의 책임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입주 초기부터 곰팡이 흔적이 있었다면 그 사실을 사진으로 남겨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4) 옵션으로 들어 있던 에어컨, 세탁기, 냉장고 같은 가전도 계약에 포함된 임대 목적물의 일부입니다. 정상적으로 사용하다 노후로 고장 났다면 임대인이 수리해야 합니다. 다만 사용 중 떨어뜨리거나 잘못 다뤄 파손했다면 임차인 부담입니다.

 

5) 전구, 형광등, 샤워기 필터, 방충망 작은 구멍 같은 소모품과 간단한 수리는 일반적으로 임차인이 부담하는 것이 관행입니다. 사는 동안 자연스럽게 교체해야 하는 물건이고 비용도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장이 나면 먼저 임대인에게 알리세요

집에 수리가 필요한 문제가 생기면 임차인은 지체 없이 임대인에게 알릴 의무가 있습니다. 이 통지를 게을리해서 피해가 커지면, 원래는 임대인 부담이었을 수리비의 일부를 임차인이 떠안게 될 수도 있습니다. 작은 누수를 몇 달 방치해 바닥재까지 썩었다면, 늘어난 피해에 대한 책임을 두고 다툼이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알릴 때는 전화만 하기보다 문자나 메신저로 고장 부위 사진과 함께 남겨두시길 권합니다. 언제 알렸는지, 어떤 상태였는지가 기록으로 남아 나중에 수리비 부담을 따질 때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임대인이 수리를 미룬다면

통지를 했는데도 임대인이 계속 수리를 미룬다면, 임차인이 먼저 수리하고 비용을 청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민법은 임차인이 임대인이 부담해야 할 필요비를 대신 지출했다면 임대인에게 곧바로 그 상환을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보일러가 고장 난 한겨울처럼 급한 상황이라면 이 방법이 현실적입니다.

 

이때는 수리 전 상태 사진, 임대인에게 보낸 통지 기록, 수리 업체의 견적서와 영수증을 꼭 챙겨두세요. 가능하다면 "언제까지 수리해 주지 않으면 먼저 수리하고 비용을 청구하겠다"는 내용을 미리 문자로 알려두는 것이 분쟁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수리비를 냈다고 해서 임의로 월세에서 빼고 입금하는 것은 피하시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임대인이 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월세를 덜 내면 연체로 다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비용을 청구하고, 월세에서 공제하는 방식은 임대인과 합의한 뒤에 진행하시길 권합니다.

 

수리가 되지 않아 집의 일부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상태가 이어진다면 차임 감액을 요구할 수 있고, 아예 살기 어려운 정도라면 계약 해지까지 검토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사실관계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므로 전문가와 상담해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집을 더 좋게 고친 비용은 어떻게 될까요

고장 수리와는 조금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임차인이 자기 돈으로 집의 가치를 높이는 공사를 한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오래된 싱크대를 새것으로 바꾸거나 창호를 교체한 경우, 이런 비용을 유익비라고 합니다.

 

유익비는 계약이 끝날 때 집의 가치가 실제로 증가한 상태로 남아 있다면, 임대인이 지출한 금액이나 증가한 가치 중 하나를 선택해 돌려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다만 실무에서는 계약서에 "임차인은 계약 종료 시 원상복구한다"는 조항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고, 이런 조항이 있으면 유익비 청구를 포기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큰돈을 들여 집을 고치려면 공사 전에 임대인과 비용 부담을 서면으로 합의해 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특약으로 미리 정해두면 다툼이 줄어듭니다

수리비 분쟁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계약할 때 특약으로 기준을 정해두는 것입니다. "노후로 인한 보일러·배관·옵션 가전의 고장은 임대인이 수리한다", "소모품 교체와 임차인 과실로 인한 파손은 임차인이 부담한다"처럼 적어두면 나중에 판단이 훨씬 쉬워집니다.

 

다만 특약으로 "모든 수리는 임차인이 한다"고 정했더라도, 판례는 이런 특약이 소규모 수선에 대한 부담을 정한 것일 뿐, 보일러 교체나 주요 배관 공사 같은 대규모 수선까지 임차인에게 넘긴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기본 설비의 큰 수리는 여전히 임대인 부담이라는 뜻입니다. 특약 작성 요령은 특약사항 글에서, 퇴거할 때의 원상회복 범위는 원상회복 글에서 자세히 정리해 두었습니다.

 


수리비 문제로 연락을 받으면 저는 먼저 "언제부터, 무엇이, 어떻게 고장 났는지 사진과 함께 집주인께 문자로 보내두세요"라고 말씀드립니다. 대부분의 수리비 분쟁은 고장 자체보다 알린 시점과 기록이 없어서 생기기 때문입니다. 누가 부담할지는 원인에 따라 정해지지만, 그 원인을 입증하는 건 결국 기록입니다.

※ 수리비 부담은 고장의 원인, 계약 내용과 특약, 사용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분쟁이 생긴 경우에는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나 법률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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